전시안내
UPCOMING : 높은 산은 하늘이 될 수 있을까 | 범 준
Hakgojae Art Center
1F
2025.11.26-12. 6
작가노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조선 시대 문신이었던 양사언이 지은 태산가의 첫 구절인 이 문장이 몇 해 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떠올랐고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이 문장은 일반적으로는 ‘높다’라는 객관적 조건보다 ‘그것을 오르려는 의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높은 산일지라도 결국은 하늘 아래에 있다고 단정 지어 이야기하는 태도에 관심이 생겼다. ‘언제까지 산은 하늘 아래에서만 존재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내가 평소에 탐구해온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머무를 것 같은 산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산은 언젠가 하늘 위를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돌을 옮기는 여인>에 등장하는 돌은 산에 있는 돌이다. 산에 있는 돌은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다. 땅은 곧 돌이고, 돌은 곧 행성이고 별이다. 그렇게 산과 돌, 행성은 서로의 경계를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변한다. 결국, 이 돌은 모든 것이 됨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 돌을 옮겨 나르는 여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동시에 누구든 될 수 있는 존재다. 장소도 시대도 방향도 읽히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짐작 가게 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다중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것들은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하면서, 지금 우리의 주변에도 동시에 존재한다. 즉, 과거와 현재, 생명과 비생명, 실재와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들이다.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한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서로 달랐던 것이 모두 같은 것이 되는 지점이 생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은 모든 것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 앞으로 면적이 더 넓어질 작품인 <벨루가 사냥>은 우연히 온라인에서 본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하였다.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사라지고, 물개와 물범이 돌아오지 않게 되자 북극곰은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바위섬에 올라 벨루가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북극곰의 사냥 방식이 우리가 규칙이라고 믿었던 기존의 생태 법칙을 무너뜨린다.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 말하는 것들이 먼 미래에서는 단지 일시적 현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는 일어설 땅을 잃은 북극곰은 더 깊은 바다나 더 높은 산을 넘어 우주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시장 바닥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굴러다닌다. 이 비닐봉지는 작가를 대변한다.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을 대변한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비닐봉지는 벽과 사물, 사람과 부딪히며 관계를 쌓아가고 인연을 엮어 간다. 그것은 방향을 잃는 동시에, 매 순간 새로운 방향을 발견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끊임없는 이동과 변화, 관계와 인연의 사이에서 질문을 이어간다. ‘높은 산은 하늘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