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_ A Live Emptiness 2 , 2026, Oil on canvas, 116.8. x 80.3 cm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 LBYP, 2026, Oil on canvas, 116.8 x 80.3 cm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 LMWP, 2026, Oil on canvas, 116.8 x 80.3 cm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 LBPW, 2026, Oil on canvas, 116.8 x 80.3 cm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 LBEY, 2026, Oil on canvas, 116.8 x 80.3 cm
SHIN HYE SUN, Take Out The Heart 7 LBM, 2026, Oil on canvas, 53.0 x 45.5 cm
SHIN HYE SUN, Take Out The Heart 9 LWM, 2026, Oil on canvas, 53.0 x 45.5 cm
SHIN HYE SUN, The Paper Bag of Thought C (Composition), 2026, ceramic on canvas, 33.5 × 24.5 cm (each)
UPCOMING_사색종이가방: 살아있는 여백 | 신혜선

 





Hakgojae Artcenter B1F  


2026. 10. 5 - 10. 12

 






신혜선의 <사색종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정연심(홍익대학교 교수, 비평 및 기획)



회화와 도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신혜선은 지난 10년 동안 ‘사색종이’를 주요 소재로, ‘마음을 비추다’, ‘마음을 담다’, ‘마음을 놓다’, ‘마음을 보다’를 화두로 추상 작업에 집중해왔다. 사실 ‘마음’이란 추상적인 것이라서 구체적인 어떤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이 힘들다. 또한 작가가 사용하는 소재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지극히 평범한 종이 포장과 사각형 구조이고 이것들은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물들이다. 그는 이러한 구체적 사물의 기능보다는 우리의 지각 자체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매개체로 특정 사물들을 변화시켜 왔다. 
    특히 작가는 소비문화에 익숙한 동시대인들이 매일 접하는 쇼핑백에 주목하며 주로 무엇인가를 담는 ‘용기’나 ‘포장’ 역할을 하는 종이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종이백은 사용 이후 무심코 버려지며 재활용되더라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소모적이고 폐기되는 성질을 가진다. 작가는 종이백과 같은 동시대적인 물건들이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표하고 역으로 이것들을 조금 더 사색적이고, 가치로우며 오래 우리의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했다. 신혜선은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의 눈 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베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추상적인 장으로 돌아온 사색종이는 이번 학고재 전시에서는 ‘살아있는 여백’으로 불린다. 언뜻 보면 신혜선의 작업은 전면 추상으로 보이며, 미묘한 여백들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여러번 칠하면서 붓질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순간까지 표면을 칠하고 또 칠하는 행위를 거듭한다. 마치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기도하듯, 그의 그림은 계속된 ‘그리기의 연속성’을 반영한다. 작품을 그리고, 또 말리고, 다시 그리고 말리는 과정은 그가 도자에서 배웠던 ‘빚기와 굽기’라는 반복된 과정과 유사하다. ‘기다림’은 그의 오랜 협업자이자 가족이기도 한 판화가 신혜영에게서 보았던 작업 방식인 것 같기도 하다. 도자는 기다림의 연속으로, 마음 속으로 구상했던 많은 것들이 불과의 만남 속에서 뒤틀리기도 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적인 속성들이 드러난다. 판화 또한 찍는 순간까지도 구상했던 요소들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계산할 수 없는 우연적인 요소도 미적인 요소이다. 
   신혜선의 이번 사색 종이는 ‘살아있는 여백’을 통해서 일종의 ‘스며듦 효과’를 보여준다. 무슨 의미일까. 그림의 표면과 주변 공간은 분명히 구분되고 그림의 내부와 외부의 공간은 분리될 수 있지만, 작가는 오래 동안 이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현상학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사유해왔다. 마크 로스코나 제임스 터렐처럼, 신혜선이 보여주는 그림 속 내부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은 관람자의 몸을 통해 지각의 공간으로 전환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신혜선은 관람자의 시선을 수동적인 관찰자에 머무르게 하거나 한 위치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적극적으로 작품의 표면과 공간을 가로, 세로, 위, 아래로 탐색하게 만든다. 터렐의 작품이 대형 크기로 관람자들의 그림 ‘안’에 있게 함으로써 몰입과 숭고를 느끼게 했다면, 신혜선의 작품은 사실 큰 작품들도 있지만, 30호, 50호 작품들도 다수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은 ‘빛’을 발하는 ‘반복적인 그리기’ 기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림 속 빛에 반응하며 관람자의 몸이 여기에서 저기로 계속 움직이며 신혜선의 그림과 맞닥뜨려지고 있다. 터렐의 빛이 자연과 환경, 상황이 함께 어울려져 있다면 신혜선은 종이백이라는 익숙한 사물의 형식에서 출발해 추상적인 형태로 전환시킴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빛과 깊이감, 그림의 표면을 계속해서 지각하게 만든다. 결국 종이백은 그 형태가 가진 대상성을 탈각시키고 우리를 그림 안으로 안내하는 지시어 역할을 한다. 
    비평가 입장에서 신혜선의 그림을 보면서 회화적 표면이 어떻게 작가의 손을 통해 구현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것이 작가가 도자에서 배운 유약 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자는 그냥 구울 수도 있지만, 유약을 칠하면서 또 다른 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광택이 나기도 하며, 유약과 불을 통해 표면이 달라지는 시각 효과가 만들어진다 (이는 그의 도자가 유약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화와 도자가 서로 대화하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효과는 신혜선의 그림 속에서 빛과 표면, 깊이감, 경계가 사라지는 ‘스며듦의 효과’를 만든다. 나아가 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무엇이 그려졌나” 보다는 “내가 이 그림의 표면을 어떻게 감각하고 경험하는가”의 문제로 바꾼다. 신혜선의 회화가 가진 표면은 단순한 추상적 평면이나, 환원적 공간이 아니라, 스며듦을 통해서 깊이와 공간감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하나의 장(場)이면서, 설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우리의 시선을 작품 내부로 잠기게 해 오랫 동안 바라보게 하는 지각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이것은 한순간 소비되는 ‘종이백’이나 쇼핑백이 아니라 (즉 일상적 오브제를 즉각적인 소비의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지각적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림 앞에서 지각의 주체인 우리는 스스로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학고재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표면은 퐁티가 말했던 ‘살(la chair)’처럼, 우리의 몸뿐 아니라 세계 속에 흐르는 근원적인 질료인 살과 같은 표면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말한 것처럼 살아있는 여백의 공간이다. 사실 여백으로 보이지만, 신혜선의 그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그리기’를 통해서 선과 면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처럼 보여 여백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하나’라고 해서 층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물감의 물성을 최대한 줄여 나가면서 그림을 그려 매트 하면서도 동시에 빛의 효과를 유발한다. 사실 이 과정은 매우 어렵고 노동집약적인 것으로, 작가로서는 오히려 물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반대로 완전히 매트한 표면을 통해 물질성과 질료성을 제거하는 편이 훨씬 수월한 제작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두 과정을 오가는 ‘그리기’ 실천으로 생각을 채우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그림의 표면을 서서히 드러낸다. 
     물감의 물성, 붓질의 자국 등을 최소화함으로써 그의 그림은 정신적인 것, 사색적인 것, 관계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신혜선이 만드는 그림의 표면은 신체와 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스며드는 하나의 교차점 속에 있는 공간으로 보이며, 관람자와 그림의 표면이 주체와 객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호 작용하는 관계적 장을 만들어낸다. 즉, 그림 속 표면은 관람자를 움직이게 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얽힘을 만들어낸다. 고정되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태동시키는 것, 내가 행하는 것 같지만, 또 어떤 것으로 유도당하는 동시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살아있는 여백’이다. ‘살아있음’은 세상과 함께 숨 쉬며 관계하는 것이니까. 
    사실 신혜선 작가가 사용한 종이 포장은 무엇인가를 감싸거나 감싸는 표면 같은 것이다. 작가는 종이백을 사색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또 추상화 시키면서 이를 일종의 ‘살(flesh)’처럼 만들어 내부와 외부를 서로 만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몸과 세계가 서로 교차하고 주체와 객체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물질적 표면을 형성한다. 신혜선이 오랜 시간 구현해 온 표면은 관람자의 몸과 세계가 서로 교차하고 얽히는 사건을 발생시키는 장이 된다. 퐁티가 살을 불과 물 등과 같은 존재론적 원소로 본 것처럼, 그리고 인간만이 아니라 세계 또한 존재론적 살을 가졌다고 보았던 것처럼, 신혜선의 그림은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그 존재의 힘을 드러내는지를 포착한다. 





 

작가노트



사색종이가방: 살아있는 여백
The Paper Bag of Thought: A Live Emptiness

나의 작업은 ‘보는 것(SEE)’에서 출발했다. 나에게 보는 것은 단순히 대상을 인지하는 일이 아니다. 관심을 두고 바라보며, 세상과 만나 대상과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지각이 형성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느 날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자연의 한순간을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순간을 ‘Take Out’하다. 그것이 사색종이가방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자연의 순간을 사색종이가방에 담았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내가 보고 선택한 나만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사람들도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만의 순간을 마주하고, 그 순간을 함께 나누길 바랐다. 그렇게 나의 작업은 2015년경부터 비움으로써 더 많은 열린 가능성을 담지하며 ‘채움에서 비움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비움은 결여이거나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부정의 비움이 아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이, 나는 서사와 형상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관람자의 감각과 사유가 들숨과 날숨처럼 호흡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이것이 나의 회화에서 만나는 ‘의도된 비움’이다.
나는 이렇게 수행적인 태도로 색을 중첩하며, 마음의 온기가 담긴 겹을 쌓아 온화한 회화의 표면을 만들어왔다. 그 누구라도 거칠고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작품 앞에 마주했을 때, 어떤 사유가 담기더라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씁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의 온기를 품은 빛을 화면에 비춰 스며놓았다.
2026년 봄, 작품 앞에 잠시 머물고, 걷고 움직이며 미세한 차이를 감각하고 지각하는 ‘온화한 멈춤(Gentle Pause)’으로 작업의 새봄을 열었다.
가을 앞에서, 이번 《사색종이가방: 살아있는 여백》 전시를 통해 나의 회화는 또 다른 변화로 나아간다. 나는 화면에서 나의 서사와 형상을 더욱 비워내어, 그 자리에 희미한 색과 빛, 경계의 흔적과 같은 미세한 뉘앙스만 남겨두었다. 이제 사색종이가방은 무엇인가를 담거나 이동시키는 것을 지나, 일상에서 잠시 온화한 멈춤과 머묾을 통해 지각이 발현되는 매개체로서 작동한다.
가사와 서사가 제거된 ‘맑은 허밍’처럼.
나에게 의도된 비움은 열린 가능성의 표현이다. 이를 통해 내가 비워둔 자리로 관람자의 감각과 기억, 사유와 지각이 자유롭게 머물고 스며들 수 있다. 매 순간 새롭게 발현되는 열린 가능성이 ‘살아있는 여백’이 된다.
그렇게 지각의 장(場)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회화의 일이다.
한없이 높고 푸르른 가을 아래,우리는 살아있는 여백 앞에 서서 낮고 가벼운 호흡으로 맑은 허밍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앞을 걷고 머물며, 어떤 노래를 부를지는 관람자의 몫이다.
지금, 새로운 노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