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달 맞이 꽃, 빙하로 태어나 별이 되어 잠든_2023_Acrylic on canvas_each_162x130cm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얼음 밑에 살아서_2023_Acrylic on canvas_145.5x336cm
타오르는 빙산의 추상들_2024_Acrylic on canvas_182x351cm
빙산의 일각이 된 독도_2024_Acrylic on canvas_145x112cm
빙하되기 좋은하늘_2023_Acrylic on canvas_91x330cm
Skies_2023_Acrylic on canvas_162x390cm
환상통_2023_디지털드로잉,싱글채널영상
He ain't heavy, he's my brother_2023_싱글채널영상,Acrylic_on_canvas
UPCOMING : To Breathe, To Return, To Repeat | 황해연

 

 

 

 

 

 

 

Hakgojae Art Center  
B1F

2025.12.11-12.27




 

To Breathe, To Return, To Repeat

 




 

글 : 박경린
 

 

 

 

전시서문

황해연은 미술과 지질학을 전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화, 영상, 설치를 가로지르며 자연의 순환 속 인간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탐구해왔다. 지질학적 요소 중에서도 빙하와 화산에 집중하여 작품을 전개해왔는데, 과학적 관찰과 회화적 상상력, 시적 언어를 결합한 작품 세계가 특징이다.

짧게는 수백에서 수천년의 시간 동안 눈의 축적과 압축을 통해서 형성된 빙하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장구한 시간 속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그 장대한 시간 앞에서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불안정하다. 황해연은 빙하로 표상되는 자연과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존재를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되는 거대한 빙하 앞에 서서 인간의 삶, 그리고 죽음 모두 자연의 질서 앞에 편입되는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To Breathe, To Return, To Repeat》에서 작가는 ‘빙하·빙산 파레이돌리아’* 연작을 선보인다. 빙하·빙산의 이미지를 변형하고 상상력을 더하여 관람객이 그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빙하와 빙산이 인간과 분리된 자연이 아닌 실재하는 것으로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또한 기후 위기 앞에서 소멸되어가는 빙하의 풍경이 과거의 잔상이 아닌, 살아 있는 지금-여기의 풍경으로 소환한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변상증’이라고도 알려진 파레이돌리아는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모호한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려는 심리적 현상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달의 표면의 무늬를 사람 얼굴이나 토끼 문양 등으로 해석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작가소개

황해연은 지질학적 요소와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한 ‘지질학적 상상풍경’을 선보인다. ‘지질학적 상상풍경’이란 빙하와 화산과 같은 자연 현상을 작가의 상상력의 근원으로 삼아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을 교차하며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사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012년부터 빙하와 빙산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해온 황해연은 ‘빙하·빙산 형태 연구 드로잉’ 연작을 진행에 왔으며 사라져가는 빙하 기록해왔으며, 근래에는 ‘온난화 줄무늬’ 미디어 작품으로 기후 위기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품 등을 선보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목도하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작가노트



나는 미술과 지질학을 함께 전공하며 두 영역을 결합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빙하와 화산 같은 지질학적 요소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나의 상상력의 뿌리이자 작품 세계의 중심이다. 이를 통해 나는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을 아우르는 ‘지질학적 상상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풍경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사유하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에게 빙하는 특별하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불안정하다면, 빙하는 수천 년 동안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지구 생명의 순환을 지탱해 왔다. 나는 인간의 죽음을 ‘고잉 홈(going home)’이라고 설정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질서와 순환으로의 귀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빙하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죽어서 돌아가고자 하는 본향이자, 영원히 지켜야 할 안식처이며,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인 것이다.

내가 2012년 처음 빙산과 빙하를 그리기 시작할 때 그들은 상상의 도식적 이미지였지만, 점차 실제 빙하와 빙산의 생성 원리와 질감에 기반한 형상으로 변화했다. 빙산과 빙하의 이미지를 수집하면서 지금까지 500여 점 이상의 ‘빙하·빙산 형태 연구 드로잉 시리즈’를 제작해왔다. 드로잉은 단순한 사전 작업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실재를 붙잡는 행위였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만약 모든 빙하가 녹아버린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내가 그린 형상이 그들의 영정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드로잉에서 출발한 ‘빙산과 빙하의 형태 연구’에서 이전 작업에서 보이지 않았던 주름과 질감, 녹음·무너짐·뒤집힘 같은 물리적 변화를 담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2025년부터는 ‘빙하·빙산 파레이돌리아 시리즈’를 시작했다. 드로잉 된 형태를 변형하고 상상력을 더해, 관객이 빙하 속에서 또 다른 형상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이는 마치 구름을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험과 닮아있다. 이 과정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빙산과 빙하의 존재감을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내 작품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메시지를 담는 상징적 언어다. 때로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강렬하게 빙하를 표현하여, 그들이 더 이상 녹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최근에는 ‘온난화 줄무늬’에서 여섯 단계의 색을 추출해 바다와 대기의 색으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위기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는 에드 호킨스(Ed Hawkins)의 ‘온난화 줄무늬(Warming Stripes)’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현재 나는 이 색들을 활용해 여섯 개의 모니터를 연동한 영상 설치 작업을 준비하며, 시간에 따라 흐르는 색채의 변화에서 관객이 위기를 시각적으로 체험하도록 시도하고 있다.
내 작업에는 시적 언어 또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나는 종종 시집의 제목이나 시적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김혜순 시인의 『당신의 첫』, 한정원 시인의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 같은 작품들은 깊은 울림을 주었고, 빙하와 빙산이라는 물질적 형상 위에 시적 영감이 결합해 작업을 구성하기도 한다.
 
오늘날 빙하는 ‘생성 없는 소멸’의 단계로 빠르게 치닫고 있다. 빙하의 소멸은 내가 죽어서 돌아가야 할 집이 사라지는 불안한 상황이며, 동시에 인류 전체가 직면한 지구적 위기라고생각한다. 인하대 홍성민 교수가 말했듯 이는 수많은 ‘환경 난민’을 낳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빙하의 소멸을 자기와 무관한 먼 이야기로 여긴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2024년 개인전 〈북극빙하 독도바다〉를 열었다. 북극에서 녹은 빙하의 물이 해류를 따라 독도 앞바다에 도달한다는 지질학적 사실을 근거로,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렇게 지질학적 사실을 작품의 서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각적 조형성과 상징성의 갈등을 자주 마주한다. 과학적 데이터와 시각적 결과에 대한 만족을 동시에 붙잡아야 했기에, 그 문제를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갈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구소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후와 환경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작품 속 서사로 녹여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사실 하나를 진실하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빙하와 빙산을 그렸을 때처럼, 그것들을 자유로운 상상의 소재로 다루고 싶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빙하와 빙산을 지켜보는 일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그런 안타까움은 지질학적인 사실들과 데이터, 과학적 근거들을 작업의 서사 속에 담아내고, 이를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게 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그리는 풍경들이 사라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살아있는 존재를 담는 -필리프 자코테의 표현처럼-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이 아닌 ‘솟아오르는 살아있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이 되기를 바란다.